■ 트롯뉴스 특별기획: 사의 찬미 100년의 기록-한국 대중가요의 시작을 읽다
[9편] 미디어가 재창조한 윤심덕 신드롬
윤심덕은 사라졌지만, 그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목격자도, 시신도 남지 않은 죽음은 하나의 미스터리가 되었고, 그 미스터리는 다시 완벽한 서사가 되어 100년 가까이 스크린과 무대 위에서 끊임없이 되살아났다.
흥미로운 것은 시대마다 윤심덕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랐다는 점이다. 비극적 사랑의 주인공에서 시대를 앞서간 신여성으로, 다시 자신의 삶과 예술을 스스로 선택하려 했던 한 인간으로. 시대마다 다른 얼굴로 부활한 ‘윤심덕들’을 따라가다 보면, 한국 사회가 지난 100년 동안 그녀를 어떻게 기억하고 다시 해석해 왔는지가 보인다.
1969년, 통속적인 로맨스 영화로
윤심덕의 삶이 대형 스크린에 처음 소환된 것은 1969년 안현철 감독의 영화 ‘윤심덕’이었다. 당대 최고의 스타 신성일이 김우진을, 문희가 윤심덕을 맡아 화제를 모았다.
이 작품은 두 사람의 관계를 시대와 현실에 가로막힌 비극적 사랑, 나아가 통속적 치정극의 틀 안에서 그려냈다. 배우 이순재가 윤심덕을 짝사랑하다 정신이상에 이르는 인물로 등장하며 극적 긴장을 더 했다.
당시 대중에게 윤심덕은 예술가나 신여성이기보다 ‘현해탄 정사의 주인공’으로 기억됐다.
식민지 조선의 시대적 비극보다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이루지 못한 사랑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윤심덕의 죽음을 애달픈 멜로드라마로 소비했던 당시 대중문화의 시선이 그대로 투영된 작품이었다.
최초의 영화화는 1969년 안현철 감독의 '윤심덕' 포스터
1991년, 고뇌하는 예술가로 부활
침체 된 윤심덕 신드롬을 다시 지핀 결정적 작품은 1991년 김호선 감독의 영화 ‘사의찬미’다. 장미희가 윤심덕을, 임성민이 김우진을, 이경영이 홍난파를 연기한 이 작품은 그해 청룡영화상과 대종상의 주요 부문을 휩쓸었다.
장미희가 연기한 윤심덕은 이전의 신파적 주인공과 결이 달랐다.
영화는 그녀를 스캔들의 주인공이 아니라, 가부장적 관습과 식민지 현실이라는 벽 앞에서 몸부림치는 고뇌하는 선각자로 입체화했다. 광막한 황야를 달리는 예술가의 실존적 절망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며 윤심덕을 한국 대중문화사의 아이콘으로 등극시켰다.
이 영화를 기점으로 대중은 그녀를 ‘타락한 신여성’이 아닌 ‘시대를 앞서간 비운의 천재’로 재평가하기 시작했다. 한 편의 영화가 한 인물에 대한 사회적 독법을 바꾼 드문 사례다.
침체 된 윤심덕 신드롬을 다시불 지핀 결정적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는 1991년 김호선 감독의 영화 ‘사의찬미’ 포스터
2018년, 젊은 세대 감성 서정적 멜로
발표 100주년을 향해 가던 2018년, SBS TV 시네마 ‘사의찬미’는 이야기를 현대적 감성으로 다시 썼다. 신혜선과 이종석이 각각 윤심덕과 김우진의 역을 맡아 두 사람의 예술적 동병상련과 서정적 사랑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이 작품은 기존의 불륜 프레임을 완전히 걷어냈다. 대신 식민지 조선이라는 창살 없는 감옥에서 서로의 영혼을 구원하려 했던 예술적 동지로서의 면모를 강조했다.
“내 운명은 내가 만들어”라는 대사처럼 주체적인 삶을 갈망했던 신여성의 고뇌에 집중하며 젊은 시청자의 깊은 공감을 얻었다.
100년 전의 비극이 시대가 변해도 달라지지 않는 청춘의 실존적 고민임을 증명한 사례다.
발표 100주년을 향해 가던 2018년, SBS TV 시네마 ‘사의찬미’는 윤심덕과 김우진 두 사람의 예술적 동병상련과 서정적 사랑을 섬세하게 그려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 사진=SBS TV 시네마 ‘사의찬미’
대학로의 스테디셀러 뮤지컬로
현재진행형인 ‘윤심덕 신드롬’의 정점에는 대학로 뮤지컬 ‘사의찬미’가 있다. 초연 당시 제목은 ‘글루미 데이’였다. 2013년 첫선을 보인 뒤 10년 넘게 꾸준히 무대에 오르며 두꺼운 마니아층을 형성한 작품이다.
뮤지컬은 실존 인물 김우진과 윤심덕 사이에 가상의 인물 ‘사내’를 끼워 넣은 팩션 구조를 택했다. ‘사내’는 죽음과 염세를 의인화한 듯한 미스터리한 존재로, 두 사람을 파멸로 이끄는 동시에 예술적 영감을 자극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이 작품이 주목한 것은 두 사람의 사랑 그 자체보다 여전히 풀리지 않은 ‘실종의 미스터리’다. 극은 1926년 8월 4일 새벽, 두 사람이 사라진 현장에 제3의 목격자가 있었다는 상상에서 출발한다. 긴장감 넘치는 음악과 어둡고 탐미적인 무대는 실제 사건을 하나의 미스터리 서사로 확장시켰다.
강렬한 분위기와 해석에 매료된 관객들은 스스로를 ‘숯갱’이라 부르며 반복 관람에 나섰다.
작품은 이른바 ‘회전문 관객’을 만들어내며 한국 창작 뮤지컬 가운데 보기 드문 장기 흥행작으로 자리 잡았다.
무엇보다 ‘사의찬미’는 두 사람의 실종을 단순한 동반 자살로만 그리지 않는다. 이미 정해진 비극과 현실을 거부하고 자신들이 선택한 새로운 세계로 빠져나간 ‘탈출’일 가능성을 열어둔다. 100년 전 죽음의 서사에 자유와 선택이라는 현대적 의미를 덧입힌 것이다.
1969년 영화가 윤심덕을 비극적 사랑의 주인공으로 기억했다면, 오늘의 무대는 그를 자신의 운명을 선택하려 했던 인물로 다시 불러낸다. 윤심덕을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시선이 그만큼 달라졌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윤심덕 신드롬’의 정점에는 대학로 뮤지컬 ‘사의찬미’가 있다. / 사진=뮤지컬 ‘사의찬미’ 포스터
‘불륜’에서 ‘자유’로 100년의 시선
지난 100년 동안 윤심덕을 바라보는 시선은 극적으로 변했다.
1920년대에는 타락한 여자, 불륜의 주인공으로 몰아세우는 마녀사냥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후대의 작품들은 그녀가 견뎌야 했던 사회적 편견과 경제적 고통, 그리고 그 안에서도 놓지 않았던 예술적 자존심에 주목했다.
이제 그녀는 죽음을 택한 여인이 아니라, 구습에 항거하며 최후의 자유를 꿈꿨던 주체적 여성 예술가로 기억된다.
이 변화는 윤심덕이 변한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변한 결과다.
한 인물에 대한 해석의 궤적이 곧 그 사회의 성숙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윤심덕은 100년 동안 우리를 비춰온 거울이었다.
최근에는 글로벌 콘텐츠 시장에서도 식민지 시대 조선 여성의 삶이 주목받으며, 윤심덕이라는 이름은 한국을 넘어 ‘식민지의 슬픔과 저항’을 상징하는 예술적 자산으로 확장되고 있다.
⇨ 최종회 예고- [10편] 「100년의 유산, '사의 찬미'가 남긴 것」 유성기 2,000대에서 년간 1억 장의 시대까지, 100년의 좌표를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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