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세기 동안 ‘사의찬미’ 한 곡에 갇혀 있던 윤심덕에게,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트롯뉴스가 ‘사의찬미’ 발표 100주년을 맞아 연재한 특별기획 [사의찬미 100년의 기록 - 한국 대중가요의 시작을 읽다] 연재가 마무리된 가운데, 대중음악사학자이자 가수인 장유정 단국대학교 교수가 트롯뉴스에 ‘심덕 언니에게’ 보내는 글을 보내왔다.
‘사의찬미’는 그동안 한국 대중음악사 곳곳에서 살아 있었다. 그러나 정작 이를 기록하고 체계적으로 기억하는 작업은 오랫동안 뒷전이었다. 윤심덕이라는 이름은 ‘현해탄 정사(情死)’라는 스캔들의 문법 안에서만 소비됐고, 가수로서의 그의 목소리는 단 한 곡으로 축약됐다.
그 외면의 시간 동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윤심덕을 흠모하고 추모하며 따라 걸은 연구자가 있었다. 장유정 교수다.
윤심덕 노래 ‘추억’을 초연하다
장 교수가 첫 편지에서 꺼낸 기억은 2018년 2월 28일의 무대다.
국립현대미술관 기획전 ‘신여성 도착하다’ 연계 렉처콘서트 ‘언니는 풍각쟁이야: 재즈로 듣는 신여성’에서 그는 윤심덕의 노래 ‘추억’을 초연했다.
‘추억’은 대중에게 익숙한 윤심덕의 노래가 아니었다. 경주 한국대중음악박물관이 소장한 음원을 장 교수가 받아 2018년 처음 무대에 올렸고, 이후 앨범에 수록했다. 당시 국내에서 확인된 유일한 음반이었다.
이 노래는 2020년 발매된 장 교수의 정규 2집 ‘경성야행’에 담겼다.
1920~30년대 대중가요를 재즈로 편곡한 이 앨범에는 나혜석이 1921년과 1922년에 만든 ‘노라’를 처음으로 재현한 곡을 비롯해 김해송의 ‘카프리의 섬’, 김장미의 ‘엉터리 대학생’, 이경설의 ‘세기말의 노래’ 등 10곡이 실렸다. 그때까지 공개되지 않았던 윤심덕의 음원 ‘추억’도 여기에 포함됐다.
장 교수는 편지에서 한 세기 가까운 시간을 건너 그 노래를 처음 입 밖으로 내던 순간을 아직 기억한다고 적었다.
추억(한국대중음악박물관 소장, 윤심덕의 미공개 음원, 원곡은 윤심덕, 1926년) 노래는 장유정, 연주는 주화준 트리오(2018년 2월 28일,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MMCA토크, '언니는 풍각쟁이야: 재즈로 듣는 신여성'). 공연이 있는 강연에서 초연한 '추억'을 초연했다 / 사진=유튜브 '장유정의 음악 정류장'
“한 곡만 반복하는 것은 기억이 아니다.”
편지의 핵심은 ‘기억의 방식’에 대한 문제 제기다.
장 교수는 한 사람의 가수를 기억한다는 것이 가장 유명한 한 곡만을 반복해 이야기하는 일이 아니라고 썼다. 그가 남긴 목소리와 노래, 삶의 조각을 하나씩 찾아 다시 세상으로 불러내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는 ‘사의찬미’라는 단 한 곡에 봉인된 윤심덕 상(像)을 정면으로 겨눈다. 윤심덕은 조선 최초의 관비 유학생 출신 소프라노였고, 1926년 닛토레코드 취입 당시 수십 곡을 남긴 가수였다. 그러나 100년간 대중이 기억한 것은 그중 한 곡뿐이었다.
장 교수는 실종 100년을 맞아 곳곳에서 추모 행사와 기록 작업이 이어지는 것을 반가워하면서도, 우리가 그를 다시 불러내는 일이 고인의 안식을 방해하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다는 뜻도 함께 밝혔다.
보기 드문 노래하는 대중음악사학자
장유정 교수는 연구와 무대를 함께 걷는 드문 이력의 소유자다.
2004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일제강점기 한국 대중가요 연구-유성기 음반 자료를 중심으로’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2009년 인천문화재단의 ‘플랫폼문화비평상’ 음악 부문에서 ‘유재하 론(論)-사랑, 그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로 수상했다. 이 수상을 계기로 대중음악 평론을 시작했으며, 2008년 단국대에 부임했다.
현재 단국대 문화예술대학원 대학원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오빠는 풍각쟁이야-대중가요로 본 근대의 풍경』, 『다방과 카페, 모던보이의 아지트』, 『근대 대중가요의 지속과 변모』, 『근대 대중가요의 매체와 문화』 등이 있다.
그는 대중가요와 동요, 항일가요의 역사를 연구하는 대중음악사학자로, 2013년 ‘장유정이 부르는 모던 조선: 1930년대 재즈송’을, 2020년 두 번째 정규 음반 ‘경성야행’을 발매했다. 2022년에는 만해 한용운의 시를 노래로 만든 음반 작업을 진행해 직접 작곡과 가창을 맡기도 했다.
강의와 공연을 결합한 ‘렉처 콘서트’라는 형식을 개척해 시대별 가요사를 이야기하고 노래하는 무대를 이어 왔으며, 소논문 96편과 단독 저서 11권, 공저 24권을 낸 왕성한 연구 활동을 보였다.
대중음악사학자이자 가수인 장유정 단국대학교 교수가 원로 작곡가 김희갑의 명곡을 재 해석한 새 싱글 앨범 '기타로 부르는 김희갑의 노래' / 사진=장유정 제공
트로트와의 접점도 깊다. 지난해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는 ‘이난영부터 임영웅까지: 트로트 100년의 여정을 찾아서’를 주제로 강연했다.
장 교수는 오랜 시간 윤심덕의 삶과 노래를 따라 걸으며 쌓아 온 자신의 ‘추억’을 하나씩 꺼내어 기록하겠다고 밝혔다. 그것이 자신이 윤심덕을 기억하고 추억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아래는 장유정 교수가 보내온 윤심덕에 보내는 편지 전문이다.
제81주년 광복절 기념 공연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대한민국역사박물관) / 사진=장유정 교수 SNS
[전문] 심덕 언니에게 - 당신의 잊힌 노래를 처음 부르던 날
심덕 언니,
지금으로부터 8년 전인 2018년 2월 28일, 국립현대미술관의 <신여성 도착하다> 전시 연계 렉처콘서트 “언니는 풍각쟁이야: 재즈로 듣는 신여성”에서 저는 언니의 노래 <추억>을 초연하였습니다.
제가 만난 <추억>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윤심덕의 노래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경주 한국대중음악박물관에 국내에서 유일하게 확인된 귀한 음반이 소장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박물관에서 그 음원을 받아 오랫동안 잊혀 있던 노래를 되살려 오늘의 무대 위에 다시 올렸습니다.
한 세기 가까운 시간을 건너 처음 그 노래를 입 밖으로 내던 순간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그리고 2020년, 저는 그 노래를 음반 <경성야행>에 다시 담았습니다.
언니의 삶과 노래를 연구하면서 저는 늘 생각했습니다. 한 사람의 가수를 기억한다는 것은 가장 유명한 한 곡만을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일이 아니라고요. 그 사람이 남긴 목소리와 노래, 삶의 조각들을 하나씩 찾아 다시 세상으로 불러내는 일이라고요.
언니가 실종된 지 100년을 맞아, 곳곳에서 언니를 기억하는 행사와 기록이 이어지는 것을 보니 참 반갑고, 감사합니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언니를 다시 불러내는 일이 언니의 안식을 방해하는 것은 아닐지 염려되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더욱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오랜 시간 언니의 삶과 노래를 따라 걸으며 쌓아 온 저의 '추억'을 하나씩 다시 꺼내어 기록해보려 합니다.
그것이 제가 언니를 기억하고 추억하는 방식일 테니까요.
- 장유정 (단국대학교 교수, 대중음악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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