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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녹과 ‘화기에에’] 뮤지컬 품격과 트로트 열정의 결합…성숙한 응원문화 구축한 ‘보랏빛 온기’

박강민 기자 oasis365@gmail.com

등록 2026-06-01 14:28

단순히 가수만을 쫓는 응원문화 넘어서

스타 이름으로 사회 온기를 바꾸는 팬덤

모교 기부 릴레이 ‘에녹 장학금’까지 기탁

“화기에에는 함께 만드는 따뜻한 공기”

□ 트로트 팬덤 탐구 : 그들이 사는 세상 / 17. 에녹과 ’화기에에’


에녹은 2007년 뮤지컬 무대에 첫발을 내디딘 뒤 18년 동안 그는 매 무대를 한 편의 완성도 높은 드라마로 탈바꿈시켜 온 ‘무대 위의 연금술사’로 평가받는다./사진=에녹 SNS

트로트 무대에는 두 종류의 가수가 존재한다. 노래를 ‘부르는’ 가수와 노래를 ‘연기하는’ 가수다. 에녹(본명 정용훈)은 명백히 후자에 속하는 아티스트다. 

그런 그가 트로트라는 새로운 대본을 받아 들었을 때, 팬덤의 풍경 역시 변화했다. 단순히 스타를 쫓는 응원을 넘어 스타의 이름을 사회의 온기로 바꾸는 새로운 팬덤이 등장한 것이다. 

이름조차 따스한 ‘화기에에’와 에녹이 함께 써 내려가는 보랏빛 서사를 트롯뉴스(www.trotnews.co.kr) 기획시리즈 [트로트 팬덤 탐구 : 그들이 사는 세상] 열일곱 번째 주인공으로 조명한다.

 

 

아버지의 환갑잔치의 충격

 

에녹이 트로트에 도전하게 된 계기는 소박하면서도 강렬하다. 

발단은 아버지의 환갑잔치였다. 뮤지컬 계에서 이름을 날리던 아들에게 친척들이 노래 한 곡을 청했다. 16년간 오직 뮤지컬 음악만 불러온 에녹이 당시 꺼내 놓은 것은 트로트가 아닌 팝송이었다.

하지만 청중들의 반응은 예상외로 냉담했다. 

뜨뜻미지근한 공기가 흐르던 그 순간, 에녹은 민망하고 자책감이 들었다. “부모님을 위한 노래를 단 한 번도 제대로 불러드린 적이 없었구나!”라는 뒤늦은 깨달음은 그를 새로운 무대로 이끌었다. 

“기왕 할 거면 제대로 사고를 쳐보자”라는 결심은 2022년 MBN ‘불타는 트롯맨’ 출연으로 이어졌고, 그렇게 ‘뮤지컬 황태자’의 트로트 상륙작전이 시작되었다.

 

 

“분장실서도 트로트 듣던 배우”

 

에녹의 탄탄한 기본기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는 데뷔 전 찬양 사역팀 ‘마커스’ 소속의 CCM 가수로 활동하며 이미 수많은 청중을 울렸던 실력파였다. 한동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부 시절, 반장을 도맡을 만큼 모범생이었던 그는 그곳에서 예술적 정체성과 겸손한 가치관을 형성했다.

2007년 뮤지컬 배우로 데뷔한 뒤 ‘레베카’, ‘마타하리’, ‘캣츠’ 등 대작의 주역을 꿰차며 업계에서 ‘믿고 보는 배우’로 통했다. 하지만 그의 분장실에서는 늘 묘한 공기가 흘렀다. 

동료 배우들은 훗날 “에녹은 분장실에서 트로트를 틀어놓고 춤추던 사람이었다.”라고 폭로했다. 무대 위에서는 카리스마 넘치는 배우였으나, 가슴 한구석에는 늘 트로트의 흥이 꿈틀대고 있었던 셈이다.

 

 

경연 프로서 반전 드라마 쓰다

 

2022년 ‘불타는 트롯맨’ 예심 당시 뮤지컬 배우의 등장에 심사위원들은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에녹이 입을 떼는 순간 분위기는 급반전되었다. 가사 한 줄에 서사를 담아내는 그의 ‘뮤트(뮤지컬+트로트)’ 창법은 트로트의 경계를 허물었다. 

준결승에서 남진의 ‘님과 함께’를 엘비스 프레슬리 스타일로 재해석하며 ‘트로트 프린스’라는 칭호를 얻은 그는, 컨디션 난조에도 링거 투혼을 발휘하며 최종 TOP7에 올랐다.

에녹의 ‘진짜 드라마’는 ‘현역가왕2’에서 정점을 찍었다. 준결승에서 최하위라는 충격적인 성적표를 받았지만, 결승 1차전에서 1위를 차지하며 보여준 역전극은 팬덤 ‘화기에에’를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사진=에녹 SNS

에녹의 ‘진짜 드라마’는 ‘현역가왕2’에서 정점을 찍었다. 

준결승 최하위라는 충격적인 성적표를 받았을 때 모두가 끝이라고 생각했으나, 결승 1차전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하며 보여준 역전극은 팬덤 ‘화기에에’를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팬들에게 이 여정은 단순한 순위 싸움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는 에녹과 팬들이 함께 써 내려간 승전보”로 기억된다.

 

 

‘에녹’이라는 브랜드가 되다

 

에녹에게 2025년과 2026년은 단순한 시간의 흐름을 넘어 ‘에녹’이라는 이름이 독보적인 브랜드로 우뚝 선 시기다. 그의 행보는 국경과 장르의 경계를 무의미하게 만들 만큼 종횡무진이었다. 2025년 싱글 ‘그대는 장미보다 아름다워’로 레트로 열풍을 일으킨 그는 일본에서 디지털 싱글을 발매하며 열도 공략의 닻을 올렸다. 

특히 미니 앨범 ‘Mr. SWING’은 뮤지션으로서 써 내려갈 새로운 여정의 서막을 장식했다.

이 에너지는 2026년으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지난 2월, 도쿄 니혼바시 미쓰이 홀에서 열린 일본 첫 단독 콘서트는 뮤지컬의 품격과 트로트의 정서가 교차하는 무대에 매료된 현지 팬들의 환호 속에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무대 위 아티스트를 넘어 후배들을 이끄는 ‘마스터’의 자리까지 섭렵한 점도 눈에 띈다. MBN ‘현역가왕3’의 심사위원으로 합류한 그는 “도전의 외로움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참가자들에게 힘이 되는 마스터가 되겠다.”라는 소신을 밝히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또한, 2년 연속 서울패션위크 장광효 디자이너의 무대를 장식하며 ‘냉 미남의 정석’다운 비주얼로 패션계까지 접수했다. 

예술 전 영역을 넘나들며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현재, 그야말로 가장 찬란한 ‘에녹의 시대’가 전개되고 있다.

 

 

‘화기에에’ 12년 나눔의 물결

 

에녹의 공식 팬클럽 ‘화기에에’는 2014년에 탄생했다. 

‘화목한 기운(和氣)이 따뜻한 안개(靄靄)처럼 온 세상을 덮는다.’라는 뜻의 이름처럼 이 팬덤은 경쟁보다 나눔에 가치를 둔다. 

3만 3천여 명의 회원(2026년 기사작성일 기준)들이 만들어내는 시너지는 단순한 팬덤 활동을 넘어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공연장 매너를 중시하는 뮤지컬 팬들의 품격과 경연장의 화력을 책임지는 트로트 팬들의 열정이 결합해 ‘화기에에’만의 독특하고 성숙한 응원문화를 구축했다는 분석이다./사진=에녹 SNS

이 팬덤이 유독 특별한 이유는 ‘뮤지컬 팬’과 ‘트로트 팬’의 이중 레이어 구조에 있다. 

공연장 매너를 중시하는 뮤지컬 팬들의 품격과 경연장의 화력을 책임지는 트로트 팬들의 열정이 결합해 ‘화기에에’만의 독특하고 성숙한 응원문화를 구축했다는 분석이다.

 

 

‘에녹 장학금’ 7,500만 원 기적

 

팬덤 ‘화기에에’의 서사 중 가장 눈물겨운 대목은 에녹의 모교인 한동대학교와의 인연이다. 이들의 기부는 단순한 금액 전달을 넘어선 ‘감동의 릴레이’였다.

시작은 한 팬의 숭고한 결단이었다. 팬클럽 회원 김기향 씨는 건강상 이유로 콘서트에 참석할 수 없게 되자, 공연 관람을 위해 모아두었던 비용 1,000만 원을 한동대학교에 기탁했다. 

가수를 직접 보지 못한 아쉬움을 후배들의 꿈을 키워주는 희망으로 승화시킨 사례다.

이 작은 불씨는 기적 같은 연쇄 반응을 일으켰다. 오순애 씨가 3,000만 원의 기부로 화답한 것을 시작으로 또 다른 팬의 500만 원 익명 기부가 이어졌고, 2026년 4월 한 후원자가 2,000만 원을 쾌척하며 누적 기부액은 7,500만 원을 돌파했다.


팬덤 ‘화기에에’의 서사 중 가장 눈물겨운 대목은 에녹의 모교인 한동대학교와의 인연이다. 한 팬의 기부로 시작된 누적 기부액은 7,500만 원을 돌파했다. /사진=한동대 제공

한동대학교는 팬들의 고귀한 뜻을 기리기 위해 이 기금을 ‘에녹 장학금’으로 명명했다. 

해당 기금은 현재 학교 강당에서 제2의 에녹을 꿈꾸며 연습에 매진하는 공연 동아리 학생들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 

에녹은 “팬들의 따뜻한 마음이 나를 늘 돌아보게 한다.”라며 “이 사랑이 나보다 더 빛날 후배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길 바란다.”라는 소감을 전했다. 가수와 팬이 한마음으로 후배들의 앞날을 밝히는 이 장면은 대한민국 팬덤 역사에 기록될 만한 명장면으로 남았다.

 

 

“에녹의 노래는 눈앞에 그려진다.”

 

에녹의 무대를 접한 이들은 “노래가 눈앞에 그려진다.”라고 입을 모은다. 

비보이 활동 경력의 춤 실력, 헤비메탈까지 섭렵한 넓은 음악적 스펙트럼, 그리고 무엇보다 상대 배우와 호흡하며 감정을 쏟아내던 뮤지컬 배우의 내공이 트로트와 만나 독보적인 아우라를 완성했다.

그는 단순히 가사를 전달하는 가수가 아니라 무대 위에서 노래의 주인공이 되어 ‘삶’을 연기한다. 팬들이 “에녹이 서는 순간 모든 장르가 ‘에녹’이 된다.”라고 찬사 하는 이유다. 

최근 스타 트렌드 투표에서 2,500만 표라는 압도적 수치로 1위에 오른 현상은 그의 진정성이 대중의 심층부에 닿았음을 증명하는 지표다.

 

 

선한 영향력의 완벽한 방정식

 

에녹과 ‘화기에에’의 행보는 트로트계에서 보기 드문 방정식을 완성하고 있다. 가수의 진정성과 팬덤의 실천이 합쳐져 사회적 가치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환갑잔치에서 느낀 부끄러움으로 시작된 도전이 일본 열도를 흔들고 모교 후배들의 꿈을 지탱하는 거대한 기둥으로 성장했다. 부산 지역 팬들의 생일 기념 기부와 에녹 본인의 디너쇼 수익금 전액 기부 소식은 이들이 지향하는 바가 단순한 ‘정상’이 아닌 ‘함께 걷는 길’임을 보여준다.


에녹과 ‘화기에에’의 행보는 트로트계에서 보기 드문 방정식을 완성하고 있다. 가수의 진정성과 팬덤의 실천이 합쳐져 사회적 가치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사진=에녹 SNS“에녹은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아니라 감정을 연기하는 아티스트이며, ‘화기에에’는 팬덤이 아니라 함께 만드는 따뜻한 공기 그 자체다.”

보랏빛 온기는 무대 조명 아래서 시작되어 차가운 사회 곳곳으로 번지고 있다. 에녹과 화기에에가 연주하는 이 협주곡은 2026년 현재 우리가 왜 트로트에 열광하는지, 그리고 왜 아티스트 에녹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지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 알림 : 트롯뉴스 ‘팬덤 탐구’ 시리즈는 트로트 팬들을 위한 기획입니다. 연재 순서는 팬덤의 인기도 등과 관계없이 취재여건에 따라 게재함을 밝힙니다. 기사에 의견이 있거나 팬클럽 관련 소식 등은 메일 등을 통하여 제안 주시면 적극적으로 반영하겠습니다. 〔트롯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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